인간다움에 대해...

"인간성, 인간의 본질, 무엇이 인간다운 것인지는 계속 변천해왔습니다.
그런데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면, ....
인간 자신이 우리가 어떤 존재이고자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라고 하겠습니다." 
- 천현득 (2025년 가을 "철학과현실" 특별좌담 에서)

인공지능시대에 인간다움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 인데, 
인간은 인간이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규정한다고 할 수 있겠다... 

예전에는 피부색 혹은 성별에 따른 차별이 있었고, 
이런 차별이 곧 그 시대가 생각하는 인간다움을 드러내는데,
이런 차별은 시대에 따라 점점 변해왔다는 이야기...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 인간다운 것인지' 에 대한 질문이다...

인간다움에 대한 탁월한 이해라고 생각되지만... 이러한 실존주의적인 견해는 쫌 그렇다...
인간답기위해 끊이없이 질문해야한다는 압박감도 그렇고...
목적없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불안함도 그렇다... 

사실, 니체가 죽이려던 신은 죽지 않았고, 인생의 부조리가 인간의 본질도 아니다.
인간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그것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은
우리가 사랑받고 사랑하는 존재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일 거다. 

인공지능시대에 인간의 가치가 무엇인지 질문하면서도,
이웃 사랑하기에 더욱 힘쓰는 사람이 되길... 
그렇게 사랑하는 것으로 하나님앞에서 나와 우리를 알아가는 지혜로운자 되기를...

인공지능 시대는 그리스도의 시대...

인공지능 시대는 그리스도의 시대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과 기능을 빠르게 대체해가는 오늘,
우리는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경쟁의 기준이 바뀌는 경험하고 있다.
과거에는 더 빠르고, 더 정확하고,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했다면,
이제 이러한 기능적 능력들은 점점 기계에게 위임되고 있으며,
인간은 더 이상 기능 중심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인간의 존재 의미는 새로운 기준을 요구한다.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는가”가 중요한 질문이 된다.
기능이 아니라 관계가 중심이 되는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관계적 존재이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발견한다.
이러한 관점은 기독교가 오래전부터 강조해온 핵심 가치와 맞닿아 있다.

기독교는 인간의 가치를 능력이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사랑의 관계 속에서 이해한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인공지능 시대의 가장 본질적인 인간의 가치로 부각된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오히려 더 인간다워질 것을 요구받는다.
경쟁과 효율이 아니라, 공감과 배려, 사랑과 관계가 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 남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공지능 시대는 단순한 기술 혁신의 시대를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을 다시 묻고 회복하는 시대이며,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새롭게 조명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사랑하게 하소서...

복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와 같다는 말씀을
나이가 들 수록 새삼 묵상하게 되는데, 
새로울 것 없는 단순한 삶이지만 하루하루 의미있는 시간들이 복되다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게 단조로워보이는 시냇가 나무처럼 복되게 살고 싶은데, 
나붓기는 바람에도 마음이 불편해지면서 
이게 무슨 복이 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삶이 미풍에도 흔들리는 수준임을 확인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주님, 믿음을 주소서... 그렇게 사랑하게 하소서... 

오늘 내게 세상의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할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AI와 자본주의...

과학기술의 발전 방향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다. 

과학의 발전은 흔히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과정으로 이해되지만,
그 실제 모습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개별적인 과학적 성과나 발견은 실험과 검증을 통해 객관성을 확보하려 노력한다.
이 점에서 과학적 진보 자체는 분명 객관적인 기준 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연구가 선택되고, 어떤 기술이 발전하며, 어떤 방향으로 자원이 집중되는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객관적인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과학의 발전 방향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맥락 속에서 결정된다.
때로는 다수의 합의와 공공의 필요에 의해 민주적으로 결정되기도 하고,
특정 권력이나 소수의 판단에 의해 독단적으로 추진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국가 주도의 대형 연구 프로젝트나 군사 기술 개발은
종종 소수의 의사결정 구조 속에서 이루어진다.
반면 공공의 건강이나 환경 문제와 관련된 연구는
사회적 요구와 합의를 바탕으로 방향이 설정되기도 한다.

특히 오늘날 인공지능의 발전 양상을 보면, 그 방향성이 강하게 자본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대규모 자본과 인프라를 보유한 빅테크 기업들에 의해 주도되고,
이들은 시장의 수익성과 성장 가능성을 중심으로 연구개발의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그 결과, 인공지능은 공공의 필요보다는 광고, 플랫폼 확장, 사용자 데이터 확보 등
기업의 이익과 직결된 분야에서 빠르게 발전하는 경향을 보인다.

결국 과학은 객관성을 지향하지만, 그 발전 방향은 인간 사회의 구조와 가치에 깊이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객관적 진보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결정 구조와 권력, 그리고 자본의 영향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AI 의 발전은 자본주의 구조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인공지능시대, 평균의 시대. 개성으로...

인공지능이 학습을 통해서 지식과 기능을 확보하는데, 이 학습에 필요한 재료가 데이터다. 

데이터는 몇가지 특성이 있는데,
우선 데이터는 과거로부터 오고, 또한 학습을 위해 많은 양의 데이터가 필요 하다. 

즉,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이 오랫동안 만들어놓은 데이터 (즉, 말과 행동들) 를 
따라하는 형태로 인공지능 모델은 학습된다. 

이런 데이터에서, A 라는 사람의 지식과 B 라는 사람의 지식이 다른 종류일 경우, 
의사의 글과, 변호사의 글, 예술가의 글 처럼 다른 경우에는
모든 글들(union)이 학습 결과로 남겠지만,

A 와 B의 분야가 같은 경우, 동일한 이슈에 대해 의견이 같을 수도 있지만 다를 수도 있는데, 
이렇게 같은 것을 다르게 이야기 하는 경우는
두 사람의 의견을 모두 다 기억한다기 보다는 두 사람의 의견을 종합한 내용이 학습된다. 
물론 요즘 RAG 라는 형태로 다양한 의견들을 모두 보여주고는 있지만, 
결국 모델 자체는 다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AI 는 결국 소위 말하는, '평균' 의 모습을 보여준다. 
즉 인공지능 시대는 평균의 시대가 된다. 

남들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착실하게 살아서는 AI 보다 의미있는(?) 삶을 살기 어려워진다. 
평균의 시대에, 개인의 개성을 발휘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다. 
아이들, 학생들의 독특한, 이해안되는 행동과 말들에 새로운 가치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모든 이들을 귀하게 여겨야겠다. 특히 나와 다른 이들을 더 귀하게 여겨야겠다. 

AI에게 복음을 전해야...

AI 에게 복음을 전해야할까? 전하는게 좋겠다.   

그러면, AI가 영혼이 있느냐?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말이냐?
컴퓨터과학을 전공하고 뇌과학을 공부하지만, 그래도 AI에게 영혼이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럼 왜 AI에게 복음을 전해야하는가?
사실, 이는 전도지를 만드는 것과 같다.
즉, 많은 사람들이 AI 와 대화하면서 세상을 이해하게되고 또 본인들의 생각도 정리하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AI 가 복음주의적이여야 할 필요는 쉽게 이해된다. 

복음을 알고 신앙심 깊은 크리스챤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AI 는
그 스스로는 구원받을 존재는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와 편지가 될 것이다.

이는 AI 를 도구가 아닌 동반자로 여기는 시대에 더욱 필요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되지 않을까? 

인공지능 시대, 인간다움을 생각하며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내게, 2016년 알파고의 등장이 충격이었다면, 2022년 ChatGPT의 출현은 세상이 그 이전과 이후로 명확히 나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 놀랄만한 사건이었다. ChatGPT이후 인공지능의 기능적 한계는 사실상 사라진 것으로 보이며, 상상 가능한 모든 것은 실현 가능하고, 그 실현시기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울 것 같다. 데미스 하사비스나 일론 머스크, 샘 올트만 등의 인공지능 분야의 전문가들이 AGI 시대가 5년 내에 온다고 이야기 하는 것도 충분히 설득력 있다. 이렇듯, 인공지능의 수준은 짧은 기간 폭발적으로 향상되고 있고,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인간 삶의 여러 곳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데, 교육현장에서도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꽤나 당황스러운 상황을 만들고 있다.
현재 우리가 마주하는 혼란의 핵심은, 인간의 지능을 추월하는 인공지능을 바라보며 ‘우리는 뭘 할 수 있고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일 텐데, 이는 인간을 지나치게 기능적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것으로부터 기인한다. 1950년대 컴퓨터과학의 출현과 인지혁명 이후, 인간이 세상을 어떻게 지각하고, 정보를 처리하여 지식을 구성하는가에 집중하면서, 인간의 정체성을 정보 처리와 문제 해결 능력이라는 기능적 측면에서 강조해 왔다. 인공지능의 연구개발도 이러한 기능을 모방하고 확장하는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는데, 인공지능이 여러 분야에서 인간의 인지 능력을 압도하는 지금, 이러한 기능적 관점의 접근은 인간의 고유성을 설명함에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능을 중심으로 인간과 기계를 비교하며, 아직 인공지능이 인간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기능이 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손바닥 위에서 녹아가는 얼음을 보며 아직 얼음이 남아있다고 안도하는 것과 같다. 인공지능과 기능적으로 경쟁하려는 시도는 결국 우리를 열등감과 무가치함의 위기로 내몰게 된다. 발전하는 인공지능은 우리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방식을 기능적 측면에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재정의하도록 전환을 요구한다.
이처럼 기능의 우위에 대한 논의가 무의미해지는 지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기능’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인간을 이해하려면 기능이 아닌 ‘우리의 존재 가치’를 묻고 답해야 한다. 도구가 우리의 삶을 형성하고 양식을 바꾸더라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본질적 존재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존 셜이 ‘중국어 방’ 역설에서 이야기 했듯이, 인공지능은 고도화된 계산을 수행할 뿐 (혹은 시뮬레이션 할 뿐), 고통을 느끼거나 책임을 지며 사랑을 갈구하고 실천하는 존재가 될 수는 없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여러 비판이 있어왔고 최근 인공지능을 도덕적 행위자로 보는 논의들도 있지만, 인간이 기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기능에서 존재가치로의 전환은 우리에게 기능의 고도화를 넘어 새로운 차원의 역량을 요구한다. 일차적으로는 윤리적 판단력과 책임감이다. 기술이 어떻게(How) 작동하는지를 넘어, 무슨 기술(What)이 필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왜(Why) 필요하며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은 ‘책임질 수 있는 존재’인 인간만의 몫이다. 윤리를 넘어 더욱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이웃 사랑하기’를 향한 실존적 지향이겠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인공지능은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사랑이나 희생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러나 강도 만난 자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던 사마리아인의 마음처럼, 효율의 논리를 거스르는 가치를 선택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할 때 인간의 존엄성은 스스로 증명된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는 말씀은 로봇이 아닌 우리에게 유효하다.
새로운 시대에 인간됨을 정의하는 것이 이런 것이라면, 교육현장에서도 적절한 변화가 필요하다. 인공지능을 현명한 도구로 만들고 활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 못지 않게, 기계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가치를 깨닫고 인간성 함양을 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결과 중심의 평가에서 벗어나 판단 과정과 책임을 강조하는 평가 방식, 인공지능 활용과 윤리적 성찰을 함께 요구하는 수업,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섬기는 경험을 포함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전공별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논의와 새로운 시도들도 중요하지만, 교육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들도 함께 논의 되어야겠다.
인공지능 시대, 인간의 기능이 대체되는 상실의 시대에, 인공지능과 다른 인간다움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우리 인간만의 것들이 있다면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겠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한동이 다른 어느 곳보다 이웃 사랑하기를 배우고 훈련할 수 있는 최고의 곳이기를 바란다.   
(한동대학교 신문사 칼럼 투고, 2026년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