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그리운 걸 게다....

2살 반 된 그 아이랑 이렇게 친하게 지낼 수 있는건...
서로 말이 다른데도 그렇게 친하게 지낼 수 있는건...
내가 사람이 그립기 때문일게다...

주변에 좋은 사람 많고 멋진 사람 많지만...
꼭 껴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그립기 때문일 게다...

사람은 멀리서 우아하게 웃으며 인사하며 지내는게 아니라
살을 맞대고 안아주고 비벼주며 살아야 된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본능으로... 나는 이 외로움으로 그렇게 알게 되는게다...

예전, 10년도 더 넘은 예전... 교회 수련회 기도회 시간에...
노진수목사님의 품에 안겨 한시간 가량을 그렇게 서럽게 울었던 것도...
어쩌면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사람이 그리워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럴게다... 사람이 그리운 걸게다... 늘 그랬듯이...
그래서 이렇게 아픈 걸게다...

사십년이 차매...

사도행전에 "사십년이 차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구절 무척이나 좋아하고
또 늘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도 점심 먹다가 울컥 생각이 나서 몇자 적습니다...

그분은 무엇을 그렇게나 오랫동안 기다리셨을까...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니... 그외에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두가지 정도
있겠습니다: 모세의 변화, 환경의 변화...

모세의 변화.
모세의 무엇이 변하기를 기다리셨고 40년이 차매 무엇이 변화되었을까를 생각해보는 건
아주 흥미롭고 재밌는 일입니다. 우선 늙었죠... 그가 120세에도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40대랑 80대의 차이는 있겠죠... 그럼 하나님은 모세가 늙어 힘이없어지기를
기다리셨을가... 사실 물리적인 힘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게 사역에 도움이 됩니다..
현장에서 사역하시는 목사님들은 다들 동의하시겠지요... ㅎㅎ

그러면 결국 모세의 성격이나 인품, 생각, 가치관 등 무형의 것들이 변화의 목표일텐데요...
성격면에서 40대때와 80대때에 달라진 점은 별로 없습니다... 사실 모세는 80이 되어서도
잘난척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격 괴팍하고 못난 모습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그는 40년전에 받은 상처를 아직도 그대로 품고있는
말하자면 40대 때 보다 못하면 못했지 좋아 진거라곤 별로 없습니다...
그가 정말 40년동안 목동으로 살았다면, 예수탄생이야기에 나오는 목자들처럼
천사가 '가라' 하면 갑니다... 가시덤불 속에 나타난 하나님앞에 '싫다' 는 소리를 한번 하기도
어려울텐데 그는 5번이나 "하나님을 거절" 합니다... 그 고약한 성격 안죽은 거죠...
그리고 그렇게 거절하는 이유는 그 가슴깊이 뿌리박힌 상처 때문아니겠습니까...
"힘있을때 할려고 했더니 그렇게 안도와주시더니 이제와서 다시 뭘 하자고 부르십니까"
그 마음 깊은 곳에선 그는 여전히 패권국가의 "왕자"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을 찬찬히 쳐다보면 한가지 40대의 모세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뭔가 해보겠다는 의욕" 이 사라졌다는 건데요...이게 좋은 건지 나쁜건지는 그분만이
아십니다... 하나님이 모세의 내면에서 뭔가의 변화를 기다리셨다면 이것정도 이외엔
따로 눈에 띄는 게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모세가 광야의 지도자로서 훈련을 받았을거라는 건데... 사실 40년이면
너무 깁니다... 광야에서의 생존법이나 지질,지리등 같은건 한 몇년만 굴러도 대략 알죠...
뭘 40년 씩이나...  오히려 수십수백만의 백성들을 이끌 정치적 제도적 역량이 심히 급격히
감퇴 될 뿐입니다...

그러면, 모세의 바깥, 그러니까 환경이나 다른 여건들의 변화를 기다리셨다면 글쎄요...
이집트의 정치적 상황이 변하길 기다리셨다는 건 하나님의 일하시는 스타일로 봤을 땐
좀 어불성설입니다... 필요하다면 그냥 뭉게시면 되지 뭐 40년이나 기다리실 게 없죠...
근데 한가지 하나님이 기다리셨을 법한 게 있는데요...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여호수아 14장에서 갈렙이 자기나이가 85세라고 했으니.... 모세가 40대에는 여호수아와
갈렙이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났다면 갓난아기 정도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10가지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는 장면, 광야의 유랑을 직접 보고
정복전쟁을 거치면서 다음 세대의 지도자로, 하나님의 용사로 자라기를 원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이 청장년이 될때까지 기다린게 어쩌면 이 40년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분은 그분  일하는 스타일상, 성격상 이러고도 남으실 분입니다...

어쩌든 그분은 사람을 기다리시는 건데요...
그것도 그 사람의 성격이 완전 분리/분해/수거/수리/재조립 되기를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목표/전략 등이 그분의 스타일에 맞을 때까지 기다리시는 모양입니다...

그분의 이런 독특한 일처리 스타일로 볼 때... 그 누구에게도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다 끝났다... 가망없다' 하기 전에... 그분의 이 독특한 스타일을 한번 기억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이...

마음이 답답하다가도 시리고 그러다가도 아프고 두렵다...

외로움...

주말보다 평일을 기다리기 시작한다...
주말이면 으례히 몸이 아프고
그래서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내게 된다.
외로운 마음이 몸을 괴롭히는 것이겠지...
교회를 가면 어째 이 아픔이 더 깊어진다...

10여년 전 꿈에서
몹쓸만큼 외로운 것이 무엇인지 보이시더니
이놈의 몹쓸 외로움...
그때 꿈에서 본 것보다 더 독하고 더 아프다...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고도 남도록 아픈 것을보면
그분이 주시는 훈련이겠지...
그래도 이제 그만 하셨으면...싶다...

the verses

the verses that John Piper was shocked at hearing a professor recite... 

“Therefore I tell you, do not worry about your life, what you will eat or drink;
or about your body, what you will wear. Is not life more than food, and the body 
more than clothes?  Look at the birds of the air; they do not sow or reap or store 
away in barns, and yet your heavenly Father feeds them. Are you not much more 
valuable than they? Can any one of you by worrying add a single hour to your life?

“And why do you worry about clothes? See how the flowers of the field grow. 
They do not labor or spin. Yet I tell you that not even Solomon in all his splendor 
was dressed like one of these. If that is how God clothes the grass of the field, 
which is here today and tomorrow is thrown into the fire, will he not much more 
clothe you—you of little faith? So do not worry, saying, ‘What shall we eat?’ or 
‘What shall we drink?’ or ‘What shall we wear?’ For the pagans run after all these 
things, and your heavenly Father knows that you need them. But seek first his 
kingdom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will be given to you as well. 
Therefore do not worry about tomorrow, for tomorrow will worry about itself. 
Each day has enough trouble of its own.

Matthew 6:25-34 NIV

이질감에의 적응...

블루밍턴에 온 이후 거의 매주일 새로운 교회를 다녔고 오늘 마지막 남은
한인교회를 다녀왔다. 이 타운의 거의 대부분의 교회들을 가봤다고 봐야지...
교회가 무슨 관광지도 아니고...이렇게 한번씩 다니는게 무슨 유익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본의 아니게 그렇게 다니게 됐다...

한인교회를 가면 거의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은 '나랑 다른... 잘나가는 사람들... "
이라는 느낌... 같은 교회에서 같은 예배를 드리지만 그들과 같을 수 없다는 느낌...
교회에서 느끼는 이런 이질감은, 교회보다 더 교회같은 집에서 나고자란 내게, 
가끔은 소화하기 힘든 음식 같다...  

이들이 사는 세상과 달리 내가 사는 세상은 너무 초라한거 같고  
이들이 달려가는 곳과 달리 나가 달려가는 곳은 너무 보잘것 없어 보이는
이 설명하기 힘든 이상한 느낌... 

내가 왜 이렇게도 부자연스럽고 빙판위에 헛돌아가는 바퀴처럼 헤매는지도 
알지못하고 용납하기도 쉽지 않다...
사실 남들과 별로 다를 바 없을텐데... 남들만큼 밥먹고 남들만큼 자는데... 
왠지 모를 이 알싸한 마음은 괜히 느껴지는 신기루 같은 느낌들일까.... 

이런 이질스러움에 적응될 때도 되었는데 매번 이 불편함은 아프도록 불편하다. 

황조가...

펄펄나는 저꾀꼬리
암수서로 정답구나
외로워라 이내몸은
뉘와함께 돌아갈꼬
-유리왕. 황조가.

이게 이십년쯤 전에 배운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노래인데
왜 아직 토씨하나 안헷갈리고 기억이 나는건지.... ㅠㅠ...

"Christ consciousness"

http://www.youtube.com/watch?v=xM5ILOsHLnw

what the hack is this 'Christ consciousness'? what kind of crap is that?
maybe, some "intelligent" people want to make something new?
Paul said that if anybody makes something new rather than he taught,
he/she will be cursed, even Paul himself or an angel from God...

the gospel is very simple and should be simple...
otherwise, it's not a gospel that a bunch of fishermen could live and die for...

they say, 'Christ consciousness' is "the consciousness of a human being
who has reached a higher level of evolutionary development"
it's already contradiction. "evolution" and "reaching a higher level"? 
they say, Jesus came to show how to live not how to die... 
that is, they say we can imitate Him to reach a higher level so that 
we can evolve to the next level... 

He came here to die for us not to show some sophisticated life style or 
some intelligent higher consciousness. He was and is and will be enough 
even for not well learned people like Peter and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