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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적 삶...

왜 창세기는 50장이나 될까? 왜 천지 창조와 아담 이브 이후 노아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의 이야기까지 창세기에 포함될까?

야곱의 삶이 요셉의 삶이 다 창세기에 포함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그건, 창조의 목적을 결국엔 반드시 이루고 말겠다는 하나님의 집요함... 아닐까? ㅎㅎ 

그건, 내 삶 가운데서도 그분이 창세기적인 일을 계속하신다는 뜻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건 대단히 감사한 일입니다... 

진화와 모세와 창세기에 대한 ChatGPT와의 대화 요약

가령 하나님이 모세에게 약 138억 년 전의 빅뱅과 이후 우주 역사를 압축해서 보여주었다면,
모세가 본 것은 대략 이런 장면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빛도 별도 없는 상태에서 우주가 시작되고, 빛이 나타나며, 물질이 형성되고, 별과 은하가 생기고, 태양과 지구가 형성되고, 바다와 대기가 만들어지고, 생명이 나타나고, 식물과 동물이 다양해지고, 마지막에는 인간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빅뱅, 원자, 핵융합, DNA, 자연선택, 수십억 년, 은하, 행성 형성 같은 개념이나 어휘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개념과 당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해야 합니다.

그 결과가 이를테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처럼 시작해서 빛 → 하늘과 물 → 땅과 식물 → 해·달·별 → 물고기와 새 → 육상동물 → 인간이라는 거대한 단계적 서술이 되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다만 흥미로운 점은 창세기의 순서가 현대 과학의 우주·생명 역사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주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세부 순서를 문자 그대로 대응시키면 문제가 생깁니다. 따라서 “창세기는 현대 과학을 놀랍도록 정확히 예언했다”기보다는 인간의 인지적·언어적 한계 안에서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출현에 관한 계시를 표현한 것이라고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여기에는 사실 세 층위가 있습니다.
① 실제 사건(reality): 우주의 시작 → 별과 행성의 형성 → 지구 → 생명 → 진화 → 인간.
② 모세가 경험한 계시(revelation): 하나님이 그 전체 혹은 핵심적인 모습을 어떤 형태로 보여줌.
③ 모세의 기록(description): 고대 근동의 언어·개념·세계관을 이용하여 그 경험을 표현함.

현대 과학은 주로 ①을 연구하고, 창세기는 ②와 ③을 통해 그 사건의 신학적 의미를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현대인에게 창조를 설명한다면 “약 138억 년 전 뜨겁고 밀도 높은 초기 우주가 팽창하기 시작했다”고 말씀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조차 궁극적인 실재 자체의 설명이라기보다 21세기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된 설명일 수 있습니다. 5천 년 후의 물리학자가 보면 우리의 빅뱅 설명 역시 매우 원시적인 표현일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따라서 이 관점에서는 성경의 계시를 인간 언어에 맞추어 전달한다는 ‘accommodation(수용/적응)’ 개념이 중요해집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실 때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개념을 사용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역사적으로 “하나님이 모세에게 실제로 빅뱅과 진화 과정을 영상처럼 보여주셨다”는 것을 입증할 방법은 없습니다. 오히려 더 깊고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창세기 저자가 무엇을 보았는가?”보다 “창세기 저자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가?”가 더 중요한 것 아닐까?

그렇게 접근하면 빅뱅과 진화는 그 창조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창세기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이야기한다는 구도가 가능합니다.

행복... 계산

 "Ask yourself whether you are happy, and you cease to be so." - John Stuart Mill

(행복한지 물어보면 행복하지 않게 된다. 행복은 사라져 버린다. )


"기쁨을 분석하려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기쁨은 사라진다" - C. S. 루이스


왜 행복한지 분석하려고 보면 행복은 사라져 버리는 건데, 

분석할 수 없다는 말은, 계산으로는 행복을 만들 수 없다는 것 같기도 하고, 

그말은 행복과 기쁨의 마음은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일 수 밖에... 


삶에 허락하신 기쁨의 순간들을 온전히 누리며 감사할 수 있기를... 

시냇가에 심은 나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1편 1~3절.)


최근에 자주 생각하는 구절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는 말씀... 

늘 그 자리에 서 있어서 풍경이 지루할 수도 있을텐데...  

반복되는 계절이 새롭지 않아 하루하루가 지루할 수도 있을텐데...


다른 곳이 아니라 늘 있어야 하는 시냇가 자리를 지키는 삶... 

계절에 맞춰 꽃이 피고 열매 맺는 예측가능한 삶.... 

대단한 이벤트도 없고 남들이 무심코 지나쳐버리기 쉬운 그런 삶이 

복있는 자가 누리는 은혜고 기쁨이라는 말씀이

보잘 것 없는 인생에게 적잖은 위로가 됩니다.

또한편으로는, 과연 있어야 할 자리에서 때맞춰 해야할 것들을 잘 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어 부끄럽게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이 노래가 무엇이 특별해서 시편의 1장이 된건지 궁금했는데... 

복을 바라는 마음에 좋은 나침반인 것 같아 감사한 일입니다. 


오늘 내게 주신 삶이 복됨을 알고, 

그 삶을 열심히 살아내는 것이 은혜고 기쁨이 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사촌...

선한 사마리아인의 사촌이 있었다.
길을 가다 강도만난자를 목격하고 의식이 불투명한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예수 믿으세요?'

인천상륙작전...

금쪽같다는 시간을... 너무 많아서 죽이는 사람들이 있다... 좀 한심한 이야긴데
요즘 내가 딱 이모양이다. 뭔 목표같은 거를 향해 달리는 느낌이 전혀 없다.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기 급급한... 그렇게 시간들을 죽여 삶을 떼우고 있는거다...

뭘 공부를 할까... 뭘 쫌 읽을까... 이런게 없다... 목표도 없고 꿈도 없다... 꿈이
없으면 당연히 그 자리를 복잡한 생각들이 차지하게 되고 그러한 생각들은 으례히
부정적이고 수동적이고 슬픈 내용들이다... 앞으로 뭘 해서 먹고 살까 하는 지극히
초등적인 두려움에 저당잡히게 된다. 한번씩 찾아오는 우을증이려니 하다가도
한량없이 답답하다...

사람들이 나보고 "이젠 너도 행복해라" "할 만큼 했으니 좀더 이기적으로 행복해라"
하는데... 방법이 없다... (난 "극단적 이기주의자" 라는 평도 들었으니 내가
이타주의적인 삶을 산다고는 할 수 없겠다...)

어쨌튼, 하고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먹고싶은 것도, 가보고 싶은 곳도 없는
귀차니스트의 삶에 행복은 그림의 떡같은 게 아닐까 싶다... 아니면 행복도 그저
귀찮은 상념의 일종일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이 생각이 있으시길 기도할 뿐이다... 뭔가 있겠지... 뭔가...작전이 있으시겠지...
옛날 일요 아침 드라마에서 감우성(?)이 외치듯이 "작전하나!" "작전둘!" "작전셋!"...

내게 지금 필요한 작전은 아마 인천상륙작전 정도? ㅎㅎ

it's all relative...

"In our heads, speed is not always the most important thing.
Sometimes what really matters is timing."
from http://discovermagazine.com/2009/dec/16-the-brain-what-is-speed-of-thought

yeap! it's all relative...

새로운 게임...

성도로 산다는 것...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제대로 성도답게 사는건 눈물나는 일이기도 하구요...
그렇게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파이퍼 (John Piper) 목사님 말씀처럼 성도답게 살기에 세상에서 가장 힘든곳이 미국일겁니다...
(그의 설교 'We must suffer' 에서)

성도가 된다는 건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는 것으로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하던 게임을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전에 게임에서 이기는 것이 지금의 게임에서는 지는 것일 수 있습니다.
농구장에서 손을 잘 쓰는 것이 축구장에서는 바보가 되는 것처럼 말이죠...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라는 말씀은 그래서 참입니다...
아직도 새로운 게임이 시작된지 모르고 그전 게임의 법칙들에 충실한 사람...
아직도 옛날 게임을 하는 줄 아는 것이 일만악의 뿌리입니다...

새로운 게임의 종이 울리고 달음박질이 시작되었는데도
아직도 다른 경기장의 푯대를 향해 달리는 바보같은 사람...
공중을 향해 주먹질 하는 사람...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바울의 질타는 지금 우리를 향한 권면입니다...


사업에 성공하면 크게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며 일벌레처럼 일하는 것이나
공부를 마치면 하나님 일을 하겠다는 것 만큼 교만한 것도 또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조차도 돈으로 사겠다는 오만과
그리고 학문적 성취가 하나님나라에 유익할 거라는 자만은
아직도 옛날 게임의 법칙들을 버리지못한 무지때문일 겁니다...


날마다의 삶이 눈물나게 힘들고 그래서 날마다 기도하지 않고는 살수 없다면...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만을 신뢰할 수 밖에 없다면
그는 복권에 당첨된것보다 더 크게 성공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버린 자들은 그것이 이미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것이라는 로마서의 구절들은
그렇게 참입니다...
새로운 게임에 참예하지 않는 자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자들입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는 자는 핍박을 겸하여 받고.... "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도 그 어느때보다 이곳 미국에서 가장 참입니다...
그 핍박이 싫고 힘들어 넓은 길을 택할때가 너무 많음을 고백합니다...
새로운 게임이 불편하여 옛날 습관 버리지 못하고 자꾸만 옛날 경기장을 힐끔거리는 것은
저를 비롯한 많은 성도이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큰 족쇄이며
그러할때마다 넘어지게되는 걸림돌입니다...

군인들은 사사로운 마음으로 살지 않는다는 말씀...
새로운 경기장에 빨리 적응해야겠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가까워 지는 것...
그분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
그분을 더 진실되게 사랑하게 되는 것...
그분을 더 기뻐하는 것... 더 즐거워하는 것....
그분만으로 충분히 만족하는 것....
이러한 것들이 내 삶의 진짜 목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토저 (A. W. Tozer) 의 글을 옮겨적습니다... (from his book titled 'The pursuit of God')
"오늘날 크리스챤들의 문제라면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경험의 부재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그 이상의 믿음...

in radio, somebody just said, faith is based on facts....
and many christians think like that...
but i don't think so...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 (히)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 믿음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는 것이 믿음이라...

faith 는 결코 facts 으로부터가 아니라 들음으로부터이며...(롬)
facts 는 faith 로인해 나타난다... (히)

어쨌든, 예수 살아실제,
그분을 만난 유대인들은 동일한 분을 만나고 동일한 기적들을 보면서도
다르게 반응했다... 그들의 믿음에 따라... 사실의 어떠함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닌듯이...

믿음이 이긴다...는 찬양처럼...
눈앞의 사실조차 믿음을 넘지 못한다... 성경의 숱한 이야기들이 말하듯이...

믿음은 사실 그 이상이다...

세례요한의 자살...

세례요한..... 

여자가 나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자가 없다는 그분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세례요한 그의 "자살" 은 그의 영성의 한계이며 지적 모순으로 볼 수 있죠... 

사실 그는 여러차례 세례요한 답지 않은 말과 행동을 보여줍니다.  
그중에 가장 묘한 부분이 '그는 흥하여야 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라는 표현인데요... 

저를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감탄해하는 문장입니다만 
세상에 그 누구도 가슴깊이 따르지 않는 (적어도 제 평생엔 본적 없는) 문장입니다. 

성도의 문구는 '그는 흥하여야겠고, 나도 흥하면 좋겠다' 입니다. 그리고 이게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그가 흥하는데 굳이 내가 쇠하여야 할 일이 아닌거죠... 하지만 세례요한 그는 쇠하기로 작정하고 그렇게 죽습니다. 
왜 예수님도 가만 놔두는 헤롯의 사생활을 파고 드냐는 거죠... 
예수님의 제자중에 누구라도 헤롯이나 그 누구의 사생활에 대해 왈가왈부 한적 있나요? 
바울이 위정자들의 부패에대해 일언반구라도 한적 있나요? 

유독 세례요한만이 특별이 더 거룩한 것도 아닐텐데 그렇게 불나방처럼 죽을 곳을 찾아 핏대를 세운건 
자살 행위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나면 초대교회에 얼마나 일이 많겠습니까... 
세례요한 같은 사람 하나라도 있었으면 예루살렘공회 1차2차3차 할 필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성령에 충만하여 난 사람... 
어려서 광야에 나가 메뚜기와 석청으로 연명하며 하나님앞에 서 있었던 사람... 
그가 살아남아 초대교회를 섬겼다면 그의 사역이 또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웠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작정하고 자살하게 됩니다. 철부지 초대교회를 남겨두고... 
그가 죽기직전엔 그의 영성의 바닥이 드러납니다. 
'당신이 정말 우리가 기다리는 그분 맞습니까?'... '다른 사람을 기다릴까요?'... 

세례요한의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 라는 말에 마음이 꽂혀 나도 그러해야겠다 했던 젊은 날이 아깝습니다. 
그는 틀렸습니다... 

"그는 흥하여야겠고 나도 가능하면 흥하면 좋겠다..." 하는게 정상적 성도의 표어여야 합니다...
안그래도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살고 있겠지만, 
성경을 그냥 그렇게 읽던 철없던 저로선 이제서야 깨닫습니다....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말을 너무 마음에 두지 말아야 합니다.... 
약간의 기복주의적인 신앙경향은 성도의 삶에 있어 감초와 같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또 배웁니다.. 


맞습니까? 정말 세례요한이 틀린겁니까... ? 그런겁니까? 

놀라 자빠질 만한...

예전 싸이에 쓴 글을 다시 퍼옵니다... 
뭔가 재밌는 생각이 떠올라서 첨부터 다 쓸려니 너무 길어질 듯 해서 아래 글을 reference 로....  
그럼... 

Paul Davies 의 The mind of God 의 chapter 1 을 읽고... 
(이 사람은 물리학자입니다... 제목이 '하나님의 마음' 으로 해석하면 신학이나 종교서적 같지만, 
실제는 과학적 사고에 관한 책입니다...신학이나 종교에 관한 내용은 거의 언급 안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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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말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구절처럼 철학자와 과학자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표현은 또 없을 겁니다...

말씀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완전한 세상(삶의 의미가 존재하는 공간) 에 존재하는 완전한 자이며
육신은 우리 눈에 보이는 현실적 세계입니다... 

이 두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를 만들기 위해 철학자와 과학자는 수 천년간 고민했지만 
아직도 이 비밀을 속시원히 설명해내는 이가 없습니다...


Plato (플라톤) 이 시작했고 많은 이단들이 이 달콤한 철학적 사유에 혹해 넘어갑니다. 
Plato 가 신에는 Good 이랑 Demiurge 가 있고 
Good 은 완전한 세계를 다스리고 Demiurge 는 보이는 세계를 다스린다...고 했고
어떤 이단들은 여호와 하나님은 Demiurge 다... 라고 생각했었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이후 Augustine(어거스틴) 이나 Aquinas(아퀴나스) 같은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이러한 논의를 통해 신학적 입장을 밝히게 됩니다만 
보이지 않는 Being 에서 어떻게 보이는 세계로 Becoming 하는지 
Good 이라 표현된 하나님과 Demiurge 로 표현된 하나님 사이에 
어떻게(어떤 논리적 혹은 철학적 근거로) 대화하는지는 설명하지 못한체 
그저 Terrible Difficulty (놀라 자빠질만한 어려움) 라고 할 뿐입니다. 

Davide Hume 같은 이는 Good 이란 없다고 해버리지만 삶에 의미가 없지 않다는 것 우리도 압니다. 
Immanuel Kant 같은 이는 우리에게 Good 을 향한 DNA 같은 것(a priori)이 있고 
우리의 '이성'은 Demiurge 를 이해한다고 합니다. 
Descartes 는 I think, therefore I am 이라는 말로 이 관계를 시작합니다. 
Think 라는 process 를 통해 am 이라는 state 는 의미를 갖는다...는 거죠... 

이 Being 과 Becoming 의 논의는 현대 과학자들사이에서도 활발히 진행됩니다. 
열역학 제2법칙에서도 얘기되는 엔트로피의 헷갈림... 과 
특히 Quamtum Physics 나 Hisenberg 가 말하는 불확정성의 원리에서 이르기를
Becoming 의 세상에 있는 우리는 Being 을 볼 수 없다... 
우리는 Becoming 되는 Being의 그림자를 볼 뿐이다..
전자(electron) 가 여기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저기에 있을 수 있다... 는 알기힘든 말을 합니다...
이런 논의의 최전방에 big bang 이론으로 대표되는 우주의 기원 에 관한 이론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서로 구름잡는 얘기 같은... 논의들...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나님의 은총의 계시는 
수천년간의 연구와 오늘날 최첨단의 과학으로도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 자빠질만한 은혜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 처럼 우리가 지금은 거울을 보는 것 처럼 희미하게 알지만 
그분이 오시는 날 모든 것은 얼굴대 얼굴로 보는 것 처럼 분명히 밝혀질 것입니다. 
(사실 그날이 오면 지금 궁금한건 하나도 안 궁금해지겠죠...ㅡㅡ)

그때까지, 인간이성의 한계에 부딪힐때마다 좌절하지 말고, 오히려 더 겸손함으로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를 그저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다면 족할 겁니다....

철학적 사유라는 달콤한 사탕발림에 혹하지 않으려면
인간 이성의 한계에 갖혀 어리석은 결론에 도달하지 않으려면 
히브리서 기자의 말처럼 물에 떠내려 가지 않으려면
받은 말씀들에 더 견고히 서 있어야 합니다...
또 늘 깨어 기도해야할 이유가 여기 또 있습니다. 

how dreadful is to see visions...

"And afterward, I will pour out my Spirit on all people. 
Your sons and daughters will prophesy, your old men will dream dreams, your young men will see visions. "
(Joel 2:28, NIV)

unfortunately, what His Spirit is going to change in us is our attitude to or understanding of our lives... not the lives...
some can prophesy, some can dream dreams and some can see visions... but nothing is going to change at all... 

the next but as much important as the prophesy is our response or reaction to the prophesy, dream and the visions... 

the prophesy is often misunderstood... 
it's not fortune telling... like "go to the east then you will meet a precious person."
our interaction to the prophesy plays an important role to accomplish it... 

i know He will accomplish it anyway...but if we reject it, it will be rejected by us not by Him... 
so the prophesy will not come true to us who rejected it 
but it will come true to other people who accept it and obey it....but always will come true to Him... 

we are not machines controlled by a set of commands...  we have choices to reject or accept the prophesy, dreams and visions... 
it's pretty much our call... 
how dreadful is to receive the prophesy, dreams and visions... and then how can we even pray for seeing visions?

don't be curious about the future... just trust him on it without knowing how it goes... like Abraham did...

is it really God?


i heard there have been a lot of discussion about the procedure to elect our vice president for student life here.  
actually most people including even the ones who argued the procedure was illegitimate,  say he is well qualified and he can make a good vp. 
he is a retired general, btw. 

in his defense, he said his priorities in his life were his God, his family and his country and his school.

then, where is himself in the priority? he doesn't care anything about himself? is he really a jesus or what? 

no offense to him.... but when people say their first priority is God, it seems like they mean themselves rather than God...  
what in God's name is God and who on earth is God they are talking about?
i guess they mean themselves by "God", since they themselves are the masters in their life, even though they say God is the master... 
i gotta admit that this often works to me too. 

in many cases, putting God in their speech is just a way of pretending they are (or wanna be) kind and genuine and covering (or eliminating) their greediness... 

like him, i wanna put Him in the first place of my priorities... which honestly is not the case in my life....

misunderstanding...

Kant is right. 
given a same situation, people think in different ways...
understanding is more likely about what is going on in our mind... 

when 10 people see me, they get to "understand" me in 10 different ways and finally they get to make 10 different "me"s... (which are not "me" at all, but they think they are "me"s) which is where all the misunderstanding comes from... 

Kant is so much right.  and those misunderstandings are inevitable.... we are so helpless... :( 

i know....

i know He loves me so much... 
i know He has a plan for me... and it is wonderful... 

but i don't like the way He loves me... it's too harsh... right now....
and i don't like the plan He has for me... it's too far from now... 

i live now... His all wonderful things are far from me and from now... 
the distance between His plan in future and my life in present is my sadness and sorrow....

and, i know, if someone should change, it's me... dang it!!!

- with many tears and sighs...

하나님을 기대한다는 것...

어떤이에게 그는, 아들을 주겠다 하셔놓고는 
이십여년간 연/락/두/절/ 되셨다....
또 어떤이에게 그는,  하늘의 모든 별보다 반짝이는 꿈을 주셔놓고는 
십수년간 그를 방/치/ 하셨다...

또 어떤이에게는 왕이될 것이라 하여 기름을 부으셨지만, 
또 십수년간 그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를 거닐게 하셨다....


그를 기대하는  것이 그런 것이라면... 
what's the point of expecting Him? even though it might be beatiful to Him... 

인생...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이사야 40:29-31)

소년도 피곤해지고, 장정도 넘어지는거라면 
피곤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말인데... 
은혜없이 살 수 없는 것이 인생 아닌가... 

소년의 피곤함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힘은 같은류의 양의 차이보단 다른류이겠지...
헌데 같은 인생에 작동하는 것을 보면 다른 철학자들처럼 그렇게 헷갈리게된다... 

인생... 그저 은혜로 살면 되는 것을... 
생각하면 머리 아프고, 또 그리 어지럽게 생각한들 쓸데가 없다... 
그저 하루하루 믿음으로 살아내는 것이 인생아니겠나..... 

인생... 

스스로를 외롭게 하지말라...

누가 그랬지...  스스로를 외롭게 하지말라고.... 

세상으로부터 왕따되는 것이 두려워, 먼저 세상을 왕따시키고 
혼자 독야청청하고자 하지만 혼자 엉거주춤 해진 듯한 상황들이 불편하다...

사람들을 보다보면 참 우습다... 나도 마찬가지고... 

은혜위에 은혜러라...

몇일째 침대에서 잠만 자다보니 몸도 마음도 자꾸만 내려갑니다....
오전엔 교회도 띵까고 잤더랬습니다... 
저녁을 일찍먹고 준비를 단단히 해서 도서관에 왔습니다. 
오는 길에... 불쑥 나온 찬양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은혜라는게 그런 모양입니다... 
빈잔을 보면서도 넘치는 것이 은혜인 모양입니다...

고2때였던가요.... 
중간고사를 너무 못친 날이 있었습니다... 적당히 못친게 아니고 말이죠... 선생님이 부르실 만큼...  
그때 하교길에 자전거 타고 가면서 불렀던 찬양은 '하나님 한번도 나를...' 이였더랬습니다... 

한번씩 그때 생각이 납니다. 
모든 것이 은혜고 감사의 조건입니다... 

whoever...

and whoever thouched Him became well. -Matthew 
can i also be one of the 'whoever'?